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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작년, 청주에서 5학년 아이들을 가르쳤다. 후 라는 아이가 있었다. 아이들 대부분 숙제도 잘해오고 나와의 관계도 좋아서 힘들지 않으면서도 보람 넘쳤던 한해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후 이 녀석만 유독 숙제를 안 해왔다. 숙제면 넘어가겠는데, 집에서 해와야 하는 작은 설문지 등등도 꼭 마지막까지 안 해오는 것이었다. 이 한 아이를 설득하기 위해 여러 방법을 써보았지만 아이는 늘 무력해 보였고, 난 사실 체념에 가까운 상태로 아이 모습 그대로 받아들였다. 이게 맞는 방법인가 싶을 정도로, 약간은 가식적인 모습으로 그냥 너 상황을 이해한다.. 얼마나 힘들었니? 선생님은 널 믿을게, 라는 일종의 뻔한 말로.

 그런데, 이 아이가 학기말에 관계가 조금씩 좋아지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갑자기 무언가를 잘해온 것은 아니였는데 와서 조금씩 말을 걸기 시작했다. 짧게라도 글을 써오기도 했고, 오래 기다리면 숙제를 해오기도 했다. 후의 집에서의 모습이 싫은 어머니는 계속 내게 조금 더 아이를 푸시해달라는 전화나 상담을 하셨는데, 그럴 때면 이 나이의 아이가 혼자 집에서 무얼 할 수 있겠냐며 아이를 조금 항변해주었다. 어른이 돼서도 집에 혼자 있으면 풀어지는데, 어떻게 아이가 자기 혼자서 숙제를 하고 공부를 할 수 있을까. 

 2년이 지나 아이는 중학생이 되었다. 나는 서울에서 대학원에서 졸업작품으로 제천의 학교로 다시 돌아가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부족했던 모습과 기억, 약간의 애증을 가지고 다시 찾아간 아이들은 나를 쉽사리 받아주질 않았다. 실수 투성이었던 첫 교사의 모습을 내 바람처럼 좋게 기억해주지 않는 듯 했다. 그래도 아이들은 의리로 자신들의 6학년 1년을 공개하기로 해주었는데 그거와는 별개로 아이들의 은밀함과 내면의 깊은 모습을 담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렇게 촬영을 하다 지쳐 학교 정자에 앉아 한숨을 쉬고 있는데 후가 전화 왔다.

 아무렇지 않게 안부인사를 묻고 자신의 이야기를 전한 후는, 그 이후로도 금요일쯤 내가 제천에서 지쳐있을 때면 기가 막힌 타이밍에 전화가 오곤 했다. 한동안 그렇게 가끔 전화가 오던 후는 연락이 몇 개월간 끊어졌는데 최근에 전화 와선 아이가 울었다. 여러 억울한 일과 엄마와의 갈등이 있었는지, 그냥 꺼이꺼이 울었다. 엄마는 후가 의지할 사람이 없다며 도움을 청했다. 아이를 만나러 갔다.

아이는 많이 컸다. 공부하는 것과 관련해서 많은 스트레스가 있었던 것 같았다. 엄마의 바람은 후를 회유해서 학원을 좀 가게 하고 무기력한 삶을 탈피하길 바라시는 것 같았다. 그러저러한 뻔한 조언을 하려니 아이는 이미 다 들어서 안단다. 아뿔싸, 또 그러저러한 어른이 되어버렸구나 라는 생각에 나의 말을 멈추고 몇시간 동안 후의 말을 들었다. 후는 갑자기 야구에 취미가 생겼는지 마치 스카우터가 된 것 마냥 프로야구 대부분의 선수의 기록과 기록들을 줄줄 꿰고 있었다. 이렇게 한 분야에 미칠 수가 있나 싶을 정도였다. 그리고 후는 말한다. 그렇잖아요, 쌤, 어른들이 말하는 것처럼 공부하고 학원가는 걸로 쉽게 해결된다면 왜 가난한 사람이 있고, 다들 성공 못하는거죠? 라는 말에 나는 끄덕이는 수 밖에 없었다. 그래 후야 니 말이 맞다. 늘 뻔한 말과 추상과 상투라 진실을 가리는 어른들의 거짓에서 일찍 깨달은 네가 대단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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