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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어령씨는 지성에서 영성으로 라는 책을 냈다. 무신론을 변호하기도 했던 그가 신앙을 가졌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문학계뿐 아니라 예술계에선 술렁이는 소리들이 있었다. 우리나라 지성인 하면  떠올려지는 그가 갑자기 신앙을 가지게 된 연유는 딸과 관련해서였다. 딸이 신앙을 가지게 되면서, 딸이 겪은 일련의 일들을 통해 그도 신을 받아들이게 되는데 여전히 자기는 문지방에서 서성이며 영성과 지성의 경계에 있다고 표현하는 그를, 친구를 도와 그의 인터뷰를 촬영할 기회가 생겼다. 

  딸의 죽음, 손자의 죽음을 고스란히 다 감내한 그는 어떤 슬픔의 흔적이 남아있을까? 라는 궁금증을 가진 채 그를 만났다. 영상이나 책으로 몇 번 접해서 그런가? 낯설지 않았다. 생각보다 너무 생기 있고 목소리가 또렷해서 놀랐는데, 한창 전화하는 그를 향해 반갑다는 미소를 머금고 인사를 건네자 손 인사로 대신했다. 인터뷰를 주관하는 미술관 큐레이터 분 께선 성북구에서 지냈던 그의 거주와 삶의 이야기를 묻기 시작했다. 그는 거주와 상관없는 이야기를 하는 듯했지만 그 모든 이야기들이 줄기를 잃지 않고 단아하고 또렷한 문장으로 자신의 삶까지 엮어 한 편의 영화처럼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같이 들은 우리 모두 진심으로 박수가 나왔다. 친구도 눈물이 나올 뻔했다고 했다.

  육체가 쇠약해지면 당연히 인간의 삶은 비참해지는 길 밖에 없을거라는 우려와 달리, 그는 돈과 명예, 아픔, 고난을 초월한 무언가 단단한 것이 강하게 새겨져 있었다. 그런 모습은 여하튼 내가 겪을 것은 다 겪었다는 초월적인 자만심도 아니고, 세상은 내가 아는 만큼만이라도 강하게 무언가 새기겠다는 지식의 실천적 욕망도 아니었다. 그저 그는 죽음이 어떠한 것인지 잘 아는 것 같았다. 탄생 이후엔 확실한 것은 죽음뿐이며, 자신은 죽음 앞에서 하나의 줄 글로 남는 것뿐이라 하였다. 쇠약해지는 육체와 함께 마음도 쇠약해지는 것이 인간의 길. 그렇다면 영혼을 가꾸는 것만이 우리는 비참해지는 것을 벗어날 수 있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어쨌든 내겐 일종의 연예인 같은 분이여서 그간 읽은 책이나 악수를 청하며 조금이나 아는 체를 할까 했지만, 그런 것이 참으로 무상하게 느껴지며 그냥 공손히 인사로 대신했다. 문득 성경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네 영혼이 잘 됨 같이, 네가 하는 모든 일이 잘 되길 바란다는 요한의 편지, 식당에 자주 걸려있는 문구라 늘 추상적으로 느껴졌던 그 문구가 정말로 힘 있게 느껴진다. 영혼이 잘 되길, 나의 영혼이 잘 가꾸어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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