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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에게 미열이 나서 퇴원이 조금 미뤄졌다. 폐렴이 잘 잡힐까 하여 걱정하며 노심초사하다 추이를 보고 퇴원을 하기로 결정했다. 그동안 너무나 고맙고 따뜻했던, 대학교수 중에 보기 드문 흉부외과 선생님이 마지막날 회진시간이 아님에도 굳이 아버지를 보러 한번 더 와주셨다. 마치 내가 방학실날 아이들에게 어떤 따뜻한 말로 아이들의 마지막을 위로해줘야 할까 고민하며 하는 말 처럼, 교수님은 어떤 말로 이 환자의 마음까지 , 그리고 보호자들까지 위로해줘야 하는지 한참 고민을 한 것 같았다. 

 

 101점 환자라며, 얼마나 아픔이 컸는지 본인도 큰 수술을 두 번 해서 이해한다 말했다. 그리고 인생이란 것이 얼마나 스펙타클한지 모르겠다며 앞으로 있을 고비를 조금 관조해서 지켜보자며 말했다. 그리고 마지막에 의사 선생님은 아버지가 대견스럽다며(물론 상하 관계가 아님을 강조하며), 좋은 환자였습니다. 라고 따듯히 말해주었다. 이렇게 좋은 말 할 때 그런데 선생님 하며 아버지가 말을 끊으셨다. 감동적인 순간에 왜 아버지가 말을 끊으셨지, 아버지는 다른 걱정이 아니고 앞으로 이런 의사 선생님을 만난다면 어떤 치료도 할 텐데,, 아쉽다고 마음을 표현하셨다.  옆에 있는 나도 선생님도 참 좋은 분이였다고 말할려는 찰나 나도 울컥했고 선생님도 분위기가 민망했는지 황급히 나가셨다.

 

 다시 한번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는 말을 절감한다. 학기가 시작되면 종료가 되고, 아이들은 입학을 하고 졸업을 하고 환자들은 입원을 하고 퇴원을 한다. 생의 시작이 있고 끝이 있다. 사람들은 늘 마지막이 비참한 것이라고 지레 짐작하지만, 우리의 마지막은 늘 그렇게 비참하지 않다. 졸업식에 찾아오는 특유의 환희는, 사실 모든 인생의 마지막, 설령 슬픔이 주 성분이라도 몇방울은 꼭 섞여있는 승리의 감정일지 모른다. 

 

 아버지는 몸을 고친것이 아니라 마음을 치료받은 것 같았다. 나와 어머니는 영혼이 치료 받은 것 같았다. 좋은 선생님이란 어떤 선생님인지 다시 한번 깊게 생각하게 된다. 의사로서 해야 할일은 사실 이정도는 아니였을 것이다. 의사를 어떻게 정의하기에 마련이지만, 보통은 육체의 치료만 감당하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근데 이 분은 굳이 육체의 치료를 넘어 마음과 영혼에 위로를 주고 갔다. 나는 그 분이 우리가 기대한 것 이상의 준 것으로 인해 편지를 써서 드렸다. 내가 생각한 것보다 찾아오는 은혜에 어떻게듭 답하고 싶은 것이 사람의 마음인가 보다.

 

 그러고 보니, 제자들이 꼭 마지막이 되면, 어떻게든 편지를 써오는 아이들이 있었다. 억지로 쓴 편지가 아닌,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어 안달이 난 편지들, 그런 편지들이 떠올랐다. 나도 그런 편지를 쓰고 있었다. 아이들의 편지가 얼마나 소중했던 것임을 깨닫는다. 누군가 교사의 성공의 척도가 무엇이냐면, 나는 아이들이 쓴 진솔한 편지 몇 장이 유일하게 그 교사의 마음의 크기를 척도하는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선생님, 좋은 학생, 좋은 환자, 좋은 사람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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