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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 2019 서울/삶 이야기

보호자

한벌 2019. 8. 22. 20:23

 

  아버지가 암 졸업을 앞둔 5년이 다 돼가는 지금, 다시 암 진단을 받으셨다. 암 진단을 다시 받은 그날은 이전의 떠올리던 캄캄한 것과는 다른 것이었다. 다시는 오지 않았으면 했던, 이제는 제발 끝나라 했던 무언가가 다시 찾아온 날의 무게와 충격은 정말 어떻게 표현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런 아픔이 찾아오면, 슬픔은 늘 슬픔을 부른다. 아버지의 투병에만 집중하면 되는 것을, 이 병은 혹시 엄마를 덮치지는 않을지, 머지않아 나를 잠식하지는 않을지 끊임없이 걱정에 걱정의 고리를 물게 된다. 그것이 제일 비참하다. 병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제발 여기까지, 제발 여기까지 라는 작은 탄식뿐이다. 제발 여기까지 라고 생각하는 암은, 생각보다 더 깊게 뻗어나갈 수도 있고, 제발 여기까지 라고 생각한 투병은 다른 합병증을 걱정하게 만들고, 제발 여기까지라고 생각하는 암은, 언제든 다시 찾아올 거라는 공포의 메시지를 전한다.

 

  토토토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아기 메이는 , 엄마가 위중하다는 전화를 듣고 슬퍼한다. 이리저리 뛰어다니던 메이는 아기들이 늘 제법 귀엽게 잠들듯, 장난감이 어질러진 마당에서 자는 모습이 나온다. 미야자키 하야오(감독)는 이 장면을 보면서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은 아이들이 잠을 천진난만하게 잔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잠은 최종 도피처라는 것이다. 실제의 삶을 감당할 수 없는 아이들이 최종적으로 쓰러져 도피하는 곳이 잠이라는 것이다. 가족의 아픔은, 이런 잠의 도피처마저 사라지게 한다. 그것이 그토록 무서운 것이다. 끊임없이 걱정에 걱정을 부르고, 완치라는 것이 사실은 불완전한 단어임을 인식하는 순간, 잠마저 도피처가 될 수 없어 인생을 어떻게 돌이켜봐야 할지도 모르게 되는 것이다.

 

 수술을 마친 아버지는 날 보시며 연약한 몸을 물려주어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멋쩍은 웃음을 짓는다. 멋쩍은 웃음은 이제까지 내가 처음으로 본 아버지의 웃음의 종류였다. 멋쩍게 정말 나도 어쩔 수 없다는 웃음은 세상의 끝에 가 계신 아버지의 웃음 같았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단순히 아버지의 치료만을 위해 기도하는 일을 멈추게 되는 것이었다. 치료의 연장과 건강의 연장도 결국은 우리 모두 세상의 끝에 다다르게 하는 생각이 드니, 정말 이 세상의 끝에는 무엇이 있는지, 어떻게 마무리해야 하는 것인지 정신이 번쩍 드는 것이다. 인생을 잘 마무리하게 하소서, 삶의 짧은 혜안을 벗어나 제대로 된 의지를 갖게 하소서, 이런 그럴듯한 기도가 먼저 나오게 되는 것이다.

 

 결정적으로 이런 아픔을 겪은 이후 정말 오랫동안 글을 쓰기가 싫어졌다. 고통을 마주하고 떠올리는 일이 지겹게 싫어진 것이었고, 아픔에 대한 기억만 주구장창 떠올린다면 이런 못난 글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은 것이다. 결국 이런 아픔과 슬픔은 평생 외면할 수 없다고 머리가 아닌 몸으로 체감이 되어서야 이제 나는 글을 계속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우연히 아버지 수술을 담당하신 의사분께서 블로그에 10년 전에 남긴 글을 우연히 보았는데, 그 글이 그렇게 위로가 되는 것이었다. 술을 깰 때 찾아오는 인생의 고독감 , 허무함을 홀로 느낀 짤막한 글을 보며, 이 사람은 최소한 아버지의 아픔을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의사와 예술가는 어쩌면 정말 비슷한 직업이 될 수도 있겠구나. 남들은 모두 피하고 싶은 이런 고독과 아픔을 자신의 이야기로 기록을 남기는 것이 예술가의 사명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내가 생각하는 예술은 이런 것이라는 생각이 갈수록 든다. 그것이 어쩌면 나의 서울살이 예술 공부의 최종장일지도 모르겠다. 예술은 죽음을 준비하는 것, 온 힘을 다해 내 삶으로 죽음에 관한 하나의 이야기를 만드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것이다.

 

 부모님을 남기고 병실에서 나가며, 거울 앞에 비친 나의 모습을 본다. 목에 걸린 보호자 카드, 내가 누군가의 보호자라는 생각이 이상하게 다가온다. 보호자.. 보호자.. 생소하게 들려오는 단어를 느낀다. 내가 마주한 아픔이, 누군가에게 와 닿고 홀로가 아닌 것임이 전해줄 수 있다면 어쩌면 먼 훗날 이런 구석진 곳에 있는 글이 한 사람의 가슴에 위로가 되기를. 처음엔 옆에서 나의 아픔을 같이 하는 사랑하는 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가장 컸다. 하지만 이 아픔과 고독을 우리가 피할 수 없는 것이라면, 그것이 정녕 최후에 우리가 대면해야 할 얼굴이라면, 미안한 마음을 걷고, 대담하게 함께 기도 할 마음을 먹는다. 병원 앞에 있는 대학교 운동장을 잠시 터벅터벅 걷는다. 괜스레 말을 가시 있게 했던 하루의 아픔을 하늘에 토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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