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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permaket Flowers./Writings

사라진 만두

한벌 2018. 12. 10. 13:28

 

  할머니(가쪽 조부모님은 일찍 돌아가셔서 지금 할머니를 지칭하는 분은 부산에 홀로 살고 계신 외할머니이다.)께선 식당에서 남는 음식이면 무엇이든 싸오곤 하신다. 불안에 찬 손길과 눈빛으로 휴지를 가져오셔선 구겨진 휴지 틈새가 넘쳐날 만큼 음식물들을 꽉꽉 채워서 집에 가져가곤 하신다. 한번은 할머니와 함께 미국에 살고 계신 삼촌을 만나고 왔다. 귀국하는 길, 할머니를 무사히 부산의 집까지 모셔드리곤 이튿날 아침 일찍 일어나보니 식탁 위엔 가지런히 여러 음식들이 놓여 있었다. 미국 어느 호텔의 로비에 비치되었던 자그마한 노란색 잼 통, 비행기 안에서 받은 잘게 다져진 소고기들이 들어가 있던 빵 3개와 그와 함께 제공되었던 작은 1회용 버터, 그 외 칫솔, 고추장 등을 보자 바로 전 미국에서 방문했던 장소들을 생생하게 떠올랐다. 제발 이런 것들 가져가지 말자고 잔소리를 하던 어머니의 모습도 떠올랐다.

 

 어릴 때, 명절이 되면 부모님과 혼자 계신 할머니를 뵈러 부산에 갔었다. 친척들이 모이면 으레 할머니는 만두를 빚어주셨다. 얇게 피를 빚어 예쁘게 싼 만두가 아닌, 투박하고 두꺼운 큼직큼직한 만두였다. 어른들은 고춧가루가 간장을 덮을 만큼의 많은 양을 넣어 걸쭉해질 정도의 양념간장을 만든 후, 숟가락으로 만두를 세 입 정도로 나눠먹을 크기로 잘라가며 먹었다. 밤이 되면 어머니는 할머니 다리를 경쾌하게 두드리곤 했었다. 만두피를 얇게 미는 것처럼 할머니의 다리를 가볍게 두드리는 소리를 냈다. 밤이 깊어지면 어머니는 다리를 두드리다 말고 할머니께 황해도에서 지냈던 할머니의 어린 시절에 대해 물어보았다. 할머니는 이북에서 피난 온 이야기를 한숨소리를 섞어가며 해주시곤 했었다.

 

 늘 비슷했던 이런 명절 풍경이 점차 사라지기 시작했다. 할머니는 장녀인 이모를 많이 예뻐하셨다. 할머니는 막내 삼촌과 장녀인 이모에게 마음과 돈을 많이 쓰다 보니 저절로 가운데 있는 어머니는 소외를 당했던 모양이다. 이모는 그런 상황을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여겼던 것 같다. 결국, 이모와 어머니는 그런 상황들에 대한 갈등이 깊어져갔다. 아마도 어머니는 어릴 때부터 이런 대우를 받아오신 듯 했다. 할머니께서 내게 너희 엄마는 왜 그러니? 라고 물어보신 것으로 보아, 할머니는 이 갈등 상황에 대한 이유를 나보다 모르시는 것 같았다.

 

 추석 명절 전날까지는 우리 가족이 머물다 가고, 다음날은 이모네 가족이 머물다 간다. 그렇게 서로 마주치지 않은지 10년이 넘은 것 같다. 어머니는 귀가 잘 들리지 않는 할머니의 청력을 핑계로 마음껏 언성을 높이게 된 듯 했다. 추석날 만두를 빚는 일도 사라졌고 다리를 두들기는 일도 사라졌다. 이번 추석날, 할머니 댁에서 낮잠을 자다 깨니 부모님은 밖에 나가고 안 계셨다. 할머니는 아프리카 아동들을 후원하는 티비 프로그램을 보고 계셨다. 나는 아프리카에서 지냈던 경험이 떠올라 할머니 옆에 가서 함께 티비를 보려 하니 할머니는 기다렸다는 듯이 바쁘게 내게 말을 거셨다.

 

 “아프리카가 좋으니?” 라는 말에 ,” 라고 무뚝뚝하게 목소리를 높여 대답하자 할머니는 에잇 하면서 겉으론 껄껄 웃으시지만 속내는 내가 원망스럽다는 듯이 서글픈 손길로 나를 밀치셨다. 아마도 아프리카에서 군복무를 하고 온 나에 대한 야속함과 원망을 담아 밀쳐내신 것 같다.

 

 “대학원 가면 월급은 안 주니?” 라는 말에, “라는 나의 높은 목소리에 맞춰 또 나를 밀치셨다. 가만히 교직 생활을 했으면 돈을 벌었을 기회를 저버린 나에 대한 원망과 좌절이 그대로 전해졌다. 교육대학원에 진학하여 월급을 받는 내 친구의 근황을 물어보셔서, 그 친구는 교장도 될 것이라고 괜히 부풀려 말하자 안타까움에 혀를 내두르셨다. 내가 사는 서울 집의 방세는 얼마고 방 크기는 얼마냐는 물음에 아주 작은 방에 엄청 비싼 가격이라고 하자 또 다시 나를 밀치셨다.

 

 “여자친구는 왜 없니?” 라는 말에, 아무도 나를 안 좋아한다고 말하자 할머니는 좌절하신다. 어머니가 그동안 느꼈던 할머니에 대한 서운함이 내게도 이어진 것인지 할머니를 보면 원망 섞인 생각들이 먼저 떠오른다. 할머니와의 일방적인 대화에 지쳐갈 때쯤 부모님이 돌아오셨다. 목소리를 높이며 짜증을 내는 어머니를 보며 할머니는 내게 네가 결혼을 안 해서 어머니가 짜증이 많아진 것이라고 하셨다. 그 말에 어머니와 할머니는 또 다시 언성을 높이셨다. 쉴 틈 없는 고성의 소리들 가운데 나는 밖으로 산책을 나갔다. 할머니는 내 뒷모습을 향해 세종특별시 교사가 되게 해달라고 하겠다고 기도를 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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