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작년에 제천에서 민주적 학급이라는 어설픈 운영 아래, 아이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었다. 내 생각과 내 의견이 너무나 확실함에도 아이들의 의견을 들어야 하는건 정말 너무 힘든 일이었다. 졸업식을 앞두고 아이들은 졸업식에 관한 다양한 의견을 냈다. 이건 싫다. 저건 싫다. 뻔한 인터뷰는 싫다. 리코더 불기 싫다. 쌤이 말하는 상황극도 싫다. 다 싫다는 의견이었다.


 그러더니 아이오아이의 너무너무너무를 우리반이 다 함께 추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프로듀스101에 나왔던 여자아이돌들의 노래인데 정말 30대인 내가 듣기에는 너무 고역이었다. 뿐만 아니라 아이들과 함께 춰야 했던 지난 번의 트와이스 노래도 듣기 힘들었다. 나의 기가막힌 촌극(?)시나리오를 거부하고 아이들은 그냥 아이오아이 춤을 나까지 포함해서 추자고 하였다. 고작 1주일 남은 타이밍에 말이다. 결국 또 아이돌 노래 틀고 뻔하게 가겠구나 생각했지만, 이를 악물고 아이들 의견을 수렴했다. 좋다, 니들 하고 싶은 거 하자.


 그리고 졸업 관련 장래희망 인터뷰 영상을 안찍는대신 내가 생각한 시나리오대로 영상을 찍어보자고 제안을 했다. 우리반 녀석들은 너무 자기 의견이 강해 사진도 함부로 못찍게 하는데 과연 이 말은 들어줄까 조심스럽지만 경직된 표정으로 말했다. 늘 경직되있던 한 여자아이가 앞서서 말한다.


[ 좋아요, 저번에 샘 만든 영상 재밌던데요.


그러자 다들 동조하는 분위기, 이 때를 분위기 삼아 좋아 춤은 너희 맘대로 준비하고 이 영상은 그럼 내가 만드는대로 따라오는 거야, 라고 어물쩍 넘어갔다. 생전 춤을 안추던 남자녀석들까지 여자아이들과 열심히 연습을 하는게 아닌가? 사실은 여자아이들과 제법 어울리고 싶은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결국 1주일간 우리는 열심히 연습해서 나름 뛰어난 팀워크를 보이며 공연을 해냈다. 자기들이 하고 싶은 걸 하니 자진해서 멀리 시내까지 가서 헤어밴드까지 사왔다. 나한테 사달라고 떼도 안쓰고 말이다. 


 영상은 일주일간 촬영하고, 쌤들 섭외하고 혼신의 힘을 다해 만들었다. 이게 내가 줄 수 있는 마지막 선물 인것 같았다. 두고두고 추억할 거리를 만들어 주고 싶었다. 담임인 나를 떠나 다른 선생님들과도 친해졌으면 했고,, 이젠 제법 나름 성장해서 영상 앞에서도 사진 앞에서도 환하게 웃는 너희의 모습도 너희가 내게 줄 수 있는 최선의 선물이었으리라 생각한다. 청주로 발령이 나고 학급 뒷 게시판을 어설프게 꾸미는 나를 보며 5학년 꼬마여자아이 5명이 남아서 도와주겠단다. 어찌나 열심히 꾸미던지, 나무를 만들고 하트를 그리고,,, 삐뚤삐뚤 작품을 붙이고,,, 좀 촌스러웠다. 다른반의 화려한 학급게시판에 비하니 남자샘이 꾸며서 그런건가 오해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졸업식 공연을 떠올리며, 아이들 시선에는 우리반 학급게시판이 제일 예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이제 트와이스와 아이돌 노래를 즐겨 듣게 된건, 이 녀석들의 힘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2017 - 2018 청주 > 삶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끼다시, 내 인생  (1) 2017.06.18
슬픔은 나의 힘.  (0) 2017.06.13
모험과 전주.  (0) 2017.06.07
눈물.  (0) 2017.06.03
네가 좋아진 날.  (0) 2017.03.30
트리갭의 샘물  (0) 2017.03.28
댓글
댓글쓰기 폼